교회소식


목회칼럼2020년 11월 22일 칼럼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아니고"

 해피엔딩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을 웃음 지으며 끝낼 수 있는 영광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날들 전부가 소중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내가 걸으며 지탱했던 ‘나의 날들’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습니다. 미술작품을 보면 명도(明度)와 채도(彩度)가 섞여 있습니다. 밝고 어두운 것, 선명하고 탁한 것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날들 가운데 밝고 선명한 날들만 행복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어둡고 탁한 시간을 보내면서 두렵고 힘들었을지라도 그 속에서 싸워온 싸움들이 오늘 숨 쉬고 있는 내 생을 구성했을 테니까요. 싸움마저 포기한다면 그래서 꿈도 갖지 않고 체념하고 일상에 그대로 묻혀 살았다면 오늘의 나의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힘들고 서러운 날들과 싸우면서 서로를 잊지 않을 만큼 기억의 저장고에 쌓은 기억들 위에 먼지가 수북해도 오늘 하루를 나는 또 가고 갑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나의 미래를 가슴으로 만지작거리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과만을 자랑하며 그걸 숭배하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없던 우정도 싹트고 자랐을 덥고 무서운 여름밤은 한바탕 소나기처럼 지나갔습니다. 꿈속에서 보았던 험한 몰골이 나의 것이었는지 당신의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오늘 나는 아직 숨 쉬고 있습니다. 한번 씩 트럼펫을 불며 거친 호흡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죽지만 말아야죠, 죽지만 않는다면 어차피 겹치는 길, 온 생(生)을 걸고 가고 갈 수 있습니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오래된 시간 속에서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 사람인가요? 그 사건일까요? 아니면 그 상처인가요? 마당가에 자리 잡은 벚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엔가는 다시 피어날 것을 기다리는 당신이 정녕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그스레한 미소 번지는 도톰한 얼굴로 뛰어노는 다음세대 친구들과 그 선생들, 악기 통 메고 여기저기 둘러서 조금 전 연주한 음표들을 흩뿌리는 연주자들 모두가 사무치도록 그리운 이들입니다.

 ‘부르신 곳에서 은혜의 샘터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공동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