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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문][희망 릴레이] 우리 시대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21)파주 은샘교회


                 


[희망 릴레이] 우리 시대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21)파주 은샘교회
조준영 기자  |  joshua@kidok.com
승인 2016.01.25 (월) 13:04:43


▲ 13년전 은샘교회당이 세워진 후 대형 전자회사가 들어서고, 신도시가 네 군데나 만들어 지는 등 파주는 하루하루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교회 근처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은 터키 비전트립 장면.
포기할 수 없는 열정, 끝내 열매 맺다
개척 시절부터 품은 선교비전 헌신으로 이어져 … 다음세대 교육은 부흥 밑거름


넉넉한 가운데 한 일이 아니었다. 자립하기에도 빠듯한 작은 개척교회지만 선교하는 교회이고 싶었고, 그래서 성도들은 꼬박꼬박 한 달에 500원씩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개척 12년 만에 마침내 터키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아이들까지 포함해 성도 50여 명의 작은 개척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냐고 주위에서 핀잔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됐다는 기쁨에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선교사가 8개월만에 쓰러질 듯 돌아왔다. 위암 말기였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수술을 거부했고, 성도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러나 3개월 후 선교사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1996년 11월 1일 일이었다. 고 오도균 선교사를 땅에 묻으며 조승호 목사와 은샘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께 맹세했다. “우리가 당신 몫까지 그 민족을 사랑하겠습니다.”

교회의 온 힘을 쏟아 부은 사역이 좌초된 것이었기에 시험도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나 하는 좌절감 속에서 적잖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다. 조 목사 역시 뜻밖의 시련에 수없이 통곡하고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 선교사의 죽음을 한 알의 밀알로 쓰시겠다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썩어진 밀알은 싹이 맺혔다. 오 선교사가 별세한 후 얼마 안 돼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한 청년이 자기가 대신 터키에 가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총신신대원에 입학했다. 2000년 1월 2일,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된 그를 두 번째 터키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반석 조은혜 선교사 부부였다. 세 번째 선교사는 조 목사가 주일학교 시절부터 가르쳐온 최바나바 최빛 선교사 부부로, 2008년 터키에 들어가 성경 속 길리기아 땅인 아다나 지역에서 현재 2기 사역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선교사인 이반석 조은혜 선교사는 2010년 터키로부터 추방을 당했으나, 지난 해 다시 입국이 허락돼 현재 재입국을 준비하고 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나무를 이뤄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교인들은 선교가 남다른 의미가 됐다. 교인들은 여러 차례 터키로 비전트립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학생들과 청년들 가운데 선교 헌신자들도 여럿 자라고 있다. 조 목사는 터키 내 한 종족을 품고 기도하고 있는 ‘여호수아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그 종족 가운데 선교센터를 세우고, 그들을 선교 일꾼으로 세우는 비전을 놓고 기도 중”이라고 말했다.

은샘교회의 또 다른 날개인 ‘교육’에 대한 열정은 경기도 파주로 교회를 이전할 무렵 구체화됐다. 조승호 목사는 총신신대원 1학년 때인 1983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은샘교회(구 구선교회)를 개척했는데, 상가건물을 옮겨 다니는 가운데 가장 큰 부담은 다음세대를 교육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교회당을 건축할 여유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교인들에게 세 가지를 강조하고 동의를 얻었어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체험하자,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자, 선교사를 육성해서 보내자. 세 가지를 놓고 기도하며 교회당을 건축하자고 했어요.”
교회 부지를 선정하는데 가장 첫 번째 조건은 값이 싼 곳이었다. 재정이 없기도 했지만, 다음세대를 교육할 장소면 충분했기에, 주위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지, 재개발 여지가 있는지는 따질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 사방이 논밭인 경기도 파주시 오도동 산기슭에 땅을 구했다. 건축비를 아끼느라 조 목사와 교인들이 일꾼을 자처했다. 하루는 전 교인이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반까지 벽돌 수만장을 5층 꼭대기층까지 직접 나르기도 했다.

2004년 교회당을 완공하고, 교사들과 함께 근처 학교를 찾아다니며 전도에 나섰다. 교회가 외진 곳에 있는 탓에 학교들이 모두 수 킬로미터 이상씩 떨어져 있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전 제직의 교사화 운동도 전개했다. 조 목사는 “직접 가르치지는 않더라도 기도는 할 수 있고, 전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며 모든 성도들이 주일학교 교육에 동참할 것을 권면했다. 그 결과 지금 은샘교회 모든 제직은 기도교사, 간식교사, 돌보미교사, 전도교사, 후원교사 등으로 불린다.

주 5일제 수업에 발맞춰 주중 주일학교도 활성화시켰다. ‘아빠랑 주일학교’와 ‘예수님 성품학교’가 대표적이다. ‘아빠랑 주일학교’는 말 그대로 주일학교 학생 자녀를 둔 아빠가 돌아가며 교사가 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연못 가꾸기, 물고기 기르기, 야구, 컴퓨터, 미술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이만저만 인기가 아니다. ‘예수님 성품학교’는 교회 내 놀이치료사, 음악치료사 등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특별히 부모들의 관심이 크다.

다음세대 교육에 대한 조 목사와 은샘교회의 열정은 고스란히 열매로 맺혔다. 2004년 교회당에 입당할 당시 은샘교회 교인들은 아이들을 포함해 70여 명. 현재 은샘교회 교인은 장년이 500여 명, 주일학교 학생이 500여 명에 이른다. 주일학교가 갈수록 약해져가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놀라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조 목사는 시련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천해 온 ‘선교’와 ‘다음세대 교육’을 향한 은샘교회의 열정이 이어지길 소망했다.

“교회라면 마땅히 구제하고, 선교하고, 그 일을 계속해나갈 다음세대와 제자를 키우는 일을 핵심가치로 삼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 가치관과 비전이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것이 되고, 세대를 넘어 계승되길 기도해요.”
“광야 같던 여정, 은혜 달았다”
성도들과 함께 ‘거룩한 비전’ 품고 갈 터


 

▲ 조승호 목사(파주 은샘교회)
인터뷰/ 조승호 목사

“벌써 30년 넘게 목회를 했어요. 오래 오래 목회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30년 동안 다 쏟아 부었어요.”
부자의 수십억 헌금은 스펙이지만,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은 스토리다. 은샘교회가 대형교회도, 조승호 목사가 유명한 목회자도 아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조 목사와 은샘교회가 걸어온 이야기는 과부의 두 렙돈처럼 무겁고 값지다.

신정동 개척교회 시절, 조 목사는 주일 오후예배를 마치면 교인들과 함께 영등포역 광장으로 나갔다. 3시간 여 동안 무언극도 하고, 찬양도 하고, 행인들을 붙들고 복음을 전했다. 한 주도 쉬지 않고 10여 년을 그렇게 보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교인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 형편에서 선교사 두 가정을 파송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선교비를 보내기 위해 은행 빚을 져야 했고, 다른 곳에서 빌려서 이자를 막아야 했다. 그런 가운데도 선교는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첫 번째 파송선교사를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두 번째 선교사를 태운 비행기가 터키 이스탄불로 향하던 시간, 조 목사와 교인들은 한데 모여 기도회를 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조 목사와 성도들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조 목사와 은샘교회는 이런 스토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 목사의 표현대로 광야와 같은 여정이었지만, 목말랐던 만큼 달디 단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광야와 광야 여정 속 은혜의 샘물을 맛본 교인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2004년 파주로 이전하던 때 조 목사를 동행했던 70여 명 교인들 중 지금껏 한 명도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조 목사는 “초창기 교회를 다녔던 중학생들이 이제는 선교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됐다”며 “앞으로도 단순히 세상에서 잘되고 편안하게 사는 꿈이 아니라, 좁고 힘든 길이라도 거룩한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목회를 하고 싶고, 은샘교회 식구들도 같은 비전을 품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은샘 오케스트라는 다채로운 봉사 활동으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주교 부흥 촉매제는 ‘은샘 오케스트라’
은샘교회 주일학교 부흥의 중요한 촉매제 중 하나는 주일학교 학생들과 청년들로 구성된 ‘은샘 오케스트라’다. 20년 전 초등학생 6명으로 시작된 오케스트라는 현재는 70명 규모로 늘었다.

오케스트라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다음세대를 키운다는 목적이었다. 교회는 해당 악기 전문가들을 통해 무료로 레슨을 받게 하는 등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오케스트라는 실력이 놀랍도록 향상돼 현재 주일 2부와 3부 예배에서 연주를 하고 있으며, 음악 전공자가 배출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는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도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열린음악회와 힐링음악회, 관공서 찬조공연 등이 그것이다.

은샘교회는 체계적으로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로얄아카데미’란 이름의 별도 교육과정도 개설했다. 파주 교육청에 정식 음악학원으로 등록되기도 한 로얄아카데미는 주중에 개인 레슨을 통해 학생들의 음악 달란트를 개발하고 있으며, 다자녀 가구와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